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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의 무게

 - ‘단간론파 제로’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if 연성이므로 원작과 다른 점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가.


나는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나를 옥죄여 오는 이 죄책의 존재를 부정해도 되는 것인가.
 

나는,

-

지금까지 일어난 학생회의 집단 살인을 비롯한 학교의 사건 사고들을 은폐하기 위해서, 혹은 없었던 일로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양심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리고 그저 행동만을 취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남은 마지막 알량한 자존심의 일부인, 그 아이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합리화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 괜찮을 것이다. 당장 닥쳐온 이 상황만 해결한다면, 그 아이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치료해낼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는 순간, 몰려오는 죄책감은 나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마치 절벽 끝에서 하늘만을 바라보며 당장 앞에 있는 낭떠러지를 부정하던 사람이 다시 앞을 직시하는 순간, 닥쳐오는 절망은 한 사람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한 것과 같다.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우울 등의 이유로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질 때, 다양한 정신 질환들의 증세가 일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그 아이가 계속해서 보인다. 나를 옥죄여온 죄책으로 인해 망가진 정신이 불러온, 죄책감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 형상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이 모든 것의 이유인 사람의 모습을 하며 다가온다.

-

무라사메 소슌을 죽이고 나서, 나는 더해가는 죄책감에 계속해서 망가지는 정신을 붙잡기에 바빴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더해가는 와중에, 그녀는 내 눈앞에 나타났다.

“마츠다, 지금 절망하는 거야? 천하의 마츠다가? 이상하네...”

진짜가 아니다. 그녀는 절대로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그저, 망가진 정신이 가져온 환시, 환청에 불과하다. 그녀는 이곳에 없다. 없다. 없다.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도 무시할 거야? 에노시마 쥰코라고, 마츠다가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는!”


“헛소리하지 마. 내가 언제 너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망상도 정도껏 해야지.”
 

“하? 하긴 뭐, 그렇게 빈정대는 태도가 없으면 누가 마츠다라고 믿겠어?”
 


차라리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더 나았을 텐데.
그랬다면, 조금 더 현실과 분간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을 텐데.

“... 그래서, 용건이 뭔데?”

 

“잘 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나를 위해 움직이는 거야. 내가 절망을 더욱 퍼트리기 위해서, 너는 나를 도와주는 것뿐이야. 나와 같이 사람들을 절망시키는 거지.”
 

“나는 사람들을 해칠 생각은 없어. 그저, 이 일만 끝난다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을 뿐이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직접 끝내는 거야.”
 

“그 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네가 해온 행동들은 나와 다름없이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고.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지. 그런 너는 무슨 양심이 있어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해?”
 

“그만해.”
 

“역시 마츠다도 나쁜 사람이네! 남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한 사람만을 위해 절망을 퍼트리고 있었잖아!”
 

“닥치라고 했잖아!”

 

 

 

 

 

나는 몰려오는 죄책에서 비롯된 본인을 향한 자책과 혐오의 말들을 이 여자의 형상을 빌려 끝없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즉, 이 모든 말들은 사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하지만 여태 외면해왔던 죄책감의 진상인 것이다. 여태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속죄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나 또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들의 강박은 계속해서 나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마츠다,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너의 그 양심을 버려. 그리고 계속, 계속 나를 위해서 절망을 퍼트리는 거야. 나만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퍼트려. 지금처럼 말이야.”


“......”
 

“너, 나를 정말 사랑해?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여유가 없을 텐데.”
 

“......”
 

“한심한 마츠다. 나는 너를 안에서부터 서서히 망가트릴 거야. 그리고, 기생충처럼 너를 서서히 갉아먹을 거야. 너를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유감스럽게 그러고 있지 말고 얼른 일어나서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해. 사람을 죽이고, 사건을 은폐하라고.”

나는 정말 너만을 위해서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것인가.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던 남이었다면 좋았을까. 이미 너는 나에게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너를 무시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은 내가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너, 오토나시 료코를 어떻게 생각해?”
 

“... 뭘 묻고 싶은데.”
 

“너는 정말 내가 저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지금의 너는 너를 포함해서 모두를 괴롭게 하고 있어,”
 

“근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내가 과연 저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절망에 대한 집착이 사라질 것 같아? 정말로... 내가 평생 저렇게 바보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기에 지금도 노력하고 있잖아. 너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고.”


“역시 너는 나보다 생각이 짧아. 단순히 기억을 조작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계속해서 절망만을 탐닉하게 될 운명이야. 이것도 재능이지? 초고교급 절망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왜 본인을 괴롭히면서까지 절망을 원해야만 해?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너 또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그게 당연하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에 절망했어. 이 세상을 절망했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태어날 때부터 절망을 원했다고. 더 말이 필요해?”

계속하여 절망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의미 없는 문자들로 나열하는 너를 잠시 잊자, 주어진 선택지는 그저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계속하여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답은 간단하다. 너를 죽이는 것이다.

 


너를 사랑해서 미쳐버린 내가, 너를 죽임으로써 이 모든 사건을 끝내고, 나 또한 절망에 잠겨버려 생을 마치면 해결되는 간단한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해야만 했던 것도, 너를 마지막으로 끝내야만 하는 것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의 끝을 보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발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들려오던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진다.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더라면, 그저 목소리만 인식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등의 가벼운 생각들로 다시금 나를 다잡으며 그 아이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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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코, 아직도 쓰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이 부분은 제일 공들여서 쓰는 중이라고. 말 걸지 마!”


“그, 그렇구나... 제일 중요한 부분인가 보네...”


“그러니까, 말 걸지 말라니까? 유감스럽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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